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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생활/책갈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걸작 소설 <1>

by 정원 urban831 2019.09.24
나름 그동안 읽은 좋은 책도 정리할 겸 모아봤습니다. 요즘은 관련 업계 튜토리얼이나 정치 글만 읽는 등 책을 거의 읽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소개하는 책들이 좀 지난 책일 수 있다는 점을 가만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1. 해변의 카프카 - 무라카미 하루키

아쉽게도 연극은 못봤네요.

상,하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권이 특히 걸작이었습니다. 20살 생일날에 서점에 들렸다가 발견한 책인데 당시 대학교 때문에 집에서 독립을 하게 된 시즌이였죠. 대학에서는 새내기 때부터 도서관 사서로 알바를 하면서 지냈는데 마침 이 책의 주인공도 생일날 가출을 하고 어느 소도시의 사설 도서관의 사서 알바를 시작하게 됩니다. 여러모로 제 삶과 곂치는 부분이 많아서 그 자리에서 구입했습니다. 정말 한 문장 한 문장 빨려들어 가면서 읽었습니다. 예민하던 시절이라 더욱 그랬던 것 같네요. 

묘하게 제 삶과 교집합을 이루며 천천히 읽던 중 학기가 끝나 근처 고시원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읽었습니다. 주인공도 해변의 카프카 그림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야기가 끝나더라구요. 저는 소설책을, 주인공은 그림을 들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죠. 그리고 저는 소설책을 덮고 버스 안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방황하던 시절에 큰 도움이 됬던 소설입니다. 이야기가 현실의 메타포라면 4D 체험으로 직관한 소설이였죠. 인생의 책입니다.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구요. 그나마 가장 대중적인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2. 호밀밭의 파수꾼 - J.D. 셀린저

이 책은 해변의 카프카에서 보고 알게된 소설인데 이게 이게 문제작이더군요. 국내에는 여러 번역본이 있는데 모두 읽어본 결과 <소담출판사> 번역본을 추천 드립니다. 번역을 감질맛나게 잘 살렸습니다. (잘 살렸다는 거지 번역을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믿음사였던가요. 존댓말로 번역을.. ㄷㄷ 출간한 출판사는 많은데 기본적으로 다 번역 논란이 있습니다.

이 책만큼 사춘기 시절의 남자 아이의 심리를 이렇게 잘 묘사한 책이 있을까 싶습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냥 내 자신의 이야기 하는 것 같구요. 투덜데고 불평 많고 세기말 감성이 물씬 풍기는 역대급 중2병의 모습을 정말 잘 그렸습니다. 또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 작가가 미친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너무 웃낍니다. 풍자와 해학의 다크모드 끝판왕이죠. 굉장히 우울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키득키득 되다가 빵터지는 그런 소설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뭔가 굉장히 우울한데 웃낀..ㄷㄷ)

"거기 어디야? 누구랑 있어?"
"여긴 아무도 없어. 나와 내 자신과 나 뿐이야."

줄거리는 퇴학을 당한 주인공 코필드가 퇴학 우편이 집으로 도착하는 3일 동안 뉴욕 거리를 방황하는 이야기입니다. 해변의 카프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자신의 존재를 다시 붙잡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룹니다.

은둔형 작가의 대부인 샐린저가 유명해 지는게 싫어서 (책 속 주인공이 영화를 싫어한다는 이유를 대며) 영화화를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지금은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마도 언젠가는 영화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너무 안타까웠던 헐리우드 제작자들은 소품으로 사용하기도 했죠. 멜 깁슨의 <컨스피러시>, 존 레논 암살자 마크 채프먼에 관한 영화인 <챕터 27>, 소설 탄생을 다룬 <호밀밭의 반항아> 같은 영화들이 나왔습니다.

J.D. 셀린저는 다른 장편도 있는데요. 또 재미있게 봤던게 <프래니와 주이> 입니다. 호밀밭 파수꾼이 남자 아이의 이야기라면 프래니와 주이는 방황하는 여자 아이의 이야깁니다. 기독교 세계관에 불교식 해법을 던지는 독특한 소설이었습니다.

 

 

3. 내 생의 아이들, 세상 끝의 정원 - 가브리엘 루아

캐나다의 대표작가 가브리엘 루아의 단편 모음집입니다. 이 작가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묘사에 있어서 '여성 작가'의 장점을 리미트 찍는 아름다운 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거대하고 쓸쓸한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탁월할 뿐 아니라 작가가 실제로 한글로 소설을 쓴 것 같은 완벽한 번역을 보여 줍니다. 번역가는 김화영씨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맞물려 간만에 글 다운 글을 읽는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는 무릎 위에 얹어놓은 꽃다발에 눈길을 던졌다. 보드라운 풀줄기가 리본처럼 주위를 둘러묶고 있어서 아직 풀어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내 뺨에 가져다 댔다. 섬세한 향기가 베어들었다. 그것은 태어나자마자 벌써 죽어가기 시작하는 젊고 연약한 여름을 말해주고 있었다. (찬물속의 송어 중)

내 생의 아이들의 줄거리는 (기억이 정확하다면) 가르치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고 세상 끝의 정원은 4편의 중단편을 엮은 소설책입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세계를 묘사하는 작가가 있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세상 끝의 정원> 머릿말에는 이 소설을 쓴 계기에 대해서 적어 두었는데 이게 또 걸작입니다. 캐나다가 땅이 워낙 넓다보니 기차를 타고 꽤 먼시간을 여행해야 한다고 하네요. 작가가 젊은 날 기차를 타고 넓은 대지를 횡단하고 있었는데 황량한 들판 멀리 아름다운 정원이 가꾸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신기한 마음에 그 꽃밭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중 꽃밭에서 한 중년 여성이 고개를 들고 지나가던 기차를 쳐다봤던 거죠. 황량한 대지 끝에 서서 꽃밭을 가꾸던 그 여성과 눈이 마주친 작가는 그녀가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다오." 그것을 두고 두고 마음에 담고 있던 작가는 말년에 <세상 끝의 정원>이라는 중편 소설을 쓰게 됩니다. 내용은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한 중년 여성이 작은 정원을 가꾸며 인생과 불멸에 대해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편은 세상 끝의 정원에 수록된 <한 나그네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입니다. 한 떠돌이가 혹독한 겨울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밤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주인공 가족의 집에 머무는 일종의 천일야화 같은 구성입니다. 이 단편의 엔딩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큼 너무나 아름답게 끝나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더불어서 번역가 김화영씨의 책도 추천드립니다. 이 분은 그냥 번역계의 레전드시네요.

 

 

4.  더 로드 - 코맥 맥카시

본격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대중화 시킨 소설. 한국에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100년동안 쌓이다 보면 그 중에서 빼어난 이야기 하나가 액기스처럼 완성되는데 그게 바로 이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개를 예측하기 힘든 스토리텔링은 말할 것도 없고 건조하다 못해 메마른 묘사력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한 느낌까지 줍니다. 문명이 파괴되고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에 어디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것인가 부단히도 고뇌하는 부자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사람들은 늘 내일을 준비했지. 하지만 난 그런 건 안 믿었소. 내일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어.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몰랐지.

이 책 이후로 미국 문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는데 대표적인 것이 워킹 데드죠 ㅋㅋ 독특한 것은 "쌍따옴표"가 없는 소설임에도 묘사와 대사가 구별이 간다는 겁니다. 작가만의 고유한 스타일인 것 같네요. 담담하게 한마디씩 툭툭하는게 예술적인 성취까지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인생에 한번 쯤은 만나야 할 텍스트가 아닌가 싶어요. 관련해서 아라곤 주연의 영화로도 나왔습니다. 영화는 그다지 좋진 않았습니다. 책이 워낙 대단하기 때문이 였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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